& 유머 있는 삶은 보기에 좋다 – 웃음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신앙에도 유머가 필요하다. 심방 도중에 "어디가 아프시냐”고 물었더니, "어디가 안 아픈지를 물으라"고 대답하더라. 대답하신 분의 표정은, “그래서 죽겠다”가 아니라, “그래도 감사합니다”였다. 바울도 신앙의 유머를 가지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상황:

 날마다 새신자들이 더했고, 그들을 돌보는 일도 쌓여 갔다. 사도들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보살피고, 구제하는 일에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교인들이 더 많아짐에 따라 일도 점점 과중 되었고 출신지역에 따른 “끼리 끼리”도 있었다 - 헬라파 유대인, 히브리파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그것을 말한다.

 같은 유대인이었지만, 출신 배경이 달랐다. 헬라파 유대인은 다른 지역(외국)에 근거지를 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갈등의 원인은"구제의 일에서 차별 받는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서로 다툼이 되었다.

  → 사도들의 생각은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에이 못해 먹겠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싸우다니, 교회를 해체하거나 그만두자"도 아니다. 구제의 일을 지혜롭게 맡아서 처리할 일군을 뽑은 것이다.

→ 이 일에서 사도들의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
    - "그들에게 맡겨서 일을 분산시키자. 소홀한 점이 없게 하자.
        원망과 시비를 갖게 하지 말자. 공평하게 처리하자.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하자"
   = 골치 아픈 선택이 아니라, 맡겨진 일을 해결해 가는 유머(여유)를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교회 사역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우리에게도 우선적인 사역을 결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 능력, 힘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을 중요한 사역에 집중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 일의 신앙적 교훈은 분명하다 – 즉, 교회의 직분이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한 보상의 형태나 돈을 많이 내라는 뜻에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의 직분은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한 대가로써 주는 면류관도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 열심히 교회와 성도를 섬기며 ‘봉사하라’는 의미에서 맡겨 주는 직분이다.

본문은 두 가지를 교훈하고 있다.
 

1. 교회는 영적 싸움을 하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리라”(행 6:4) = 이 구절은, 사도들이 “교회의 핵심이 무엇이며 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통하여 세계로 확장되었다 + 교회는 곧 확장된 이스라엘이다”(제임스 패커).
이 말을 통하여,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건은 신약시대 우리의 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교회/신앙생활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싸움은 이것이다
  –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 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따라서 사도들의 결정은 중요하다. 그들의 두 가지 결정을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

우리의 사역을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기도라는 말이 아니다. “기도가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만들고 가치있게 만들기도 한다(출 17:8-16).

둘째, 우리는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

구제하는 일과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것을 같이 본 것이다 = 같이 봉사하는 것이다.

 


2. 직분자들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 “칭찬을 듣는 자”이다.


직분자가 남에게 칭찬을 받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반대로, 직분자가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지 못하다면, 어떤 어려움이 따를까? 상상해보라.

김건식 담임목사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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