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는 이스라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단순하게 이스라엘 역사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역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되고, 신앙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오늘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페르시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약 2,500년 전)을 살펴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일을 이루셨는지를 알아보자.

1. 사건의 개요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르왕이 즉위 3년을 기념하여 180일간 잔치를 베풀고, 성 안에 사는 일반 사람들을 위하여 7일간 더 잔치를 연다(1:3,5) – 마지막 날에, 왕비 와스디에게 잔치 자리에 나와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온 신하들에게 보여 주도록 명령했다. 와스디가 왕명을 거절하고, 왕은 진노한다(1:12).

여기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자.

페르시아의 관습으로는 여자들은 남자와 따로 잔치를 가진다(1:9) – 이 관습에 따르면, 왕의 요구가 잘못된 것이다 + 그러나 "왕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도 법이다 – 이 법에 따르면, 왕비는 왕명을 거역한 것이 된다 – 그녀의 행동은, 매우 심각한 쟁점을 유발시켰다(1:13–18).

신하들은 왕의 입장을 두둔했다(1:16–18) – "왕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 나라의 모든 여인들이 남편의 말을 거역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로 커질 것을 우려하면서, "와스디를 폐위시켜 본을 삼으라"고 말한다(1:19–20). 왕은 와스디를 폐위시켰다(1:21–22).

와스디를 대신하여 유대인 출신인,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었다(2:17) 에스더는 나중에, 유대민족 전체가 몰살당하게 될 위기에서, 그들을 구출해내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2. 신앙적 교훈

첫째, 사람의 위기가 하나님께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께서 왕을 술에 취하게 만들어서 법에 어긋난 명령을 하도록 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와스디로 하여금 왕의 명령을 어기도록 만든 것도 아니다 –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와스디가 폐위되는 이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 세상의 일들이, 그 자체의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의 일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완벽하게 이루어 가신다.

가장 자주 접하는 질문이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이다.

예수님이 어차피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면, 누군가가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로 넘겨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일을 유다로 하여금 담당하게 했다면, 유다는 참으로 억울한 사람이 아닌가? 결코 아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이유로, 주님을 따랐고, 또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사용하셔서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내가 어떠한 일을 만나고, 나에게 어떠한 상황이 만들어지든 간에, 나를 돌보는 하나님께는 기회가 된다. 나를 신앙적으로 이끌고, 축복하실 기회로 삼으신다 – “믿고 기다리라”.

둘째,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된 것은 남다른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스더의 아름다움이 남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많은 향품으로 치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결과가 무엇인가? "에스더가~~~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더라"(에 2:15; 잠 31:30).

에스더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여인이었다 – 왕비로 간택받은 이유이다. 비록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외모, 자질, 능력이 보잘 것 없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를 때,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질 수 있다.

김건식 담임목사 이미지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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