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개역개정 빌립보서 1:2)

"평강(샬롬)" 은 유대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인사말이었다. 헬라 사람들의 말로는 ‘에이레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배고팠던 시절에는 "식사하셨습니까"라고 인사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강"이라는 말을, 인사말로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지정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 이스라엘은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있던 나라였다. 여러 강대국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
        그러한 그들에게, '평강'이라는 단어는 가슴에 그대로 와 닿는, 인사였다.
그러나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평강”은, 단순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평범한 인사가 아니다. 본문에서, “은혜와 평강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평강은 불안한 상황 가운데서, 안전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주고 받는 인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하나님과의 화해”에 기초한 평안을 가리킨다. 은혜가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평강은 그러한 은혜를 결과로 갖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해의 결과가 곧 평강이다.


1. 죄의 결과를 세 가지로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 가장 심각한 것이다.
인류 최대의 비극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다(골 1:19-22).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임에도 불구하고, 죄악에 빠진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사람을 향하여 진노를 퍼부어야 할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괴로우시겠는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 1:18). 성경은 안타까운 인간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 사람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적대감정을 가지게 된다 - 아이가 삐뚤게 나가는 것과 같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자신의 분노를 즉각적으로 심판으로 연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신다. 징계와 심판용 살상무기를 즉각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신다. 자비와 긍휼로 지켜보신다. 하나님은 평강이시다(고후 13:11; 히 13:20). 하나님과 화해할 때, 하나님의 평강을 덧입는다.

둘째, 다른 사람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 조화/평화 없는 상태가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는 우리 각자가 죽어야 맛볼 수 있는 평화이다. 공생하지 못하고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서로가 죽지 않아서이다. 내가 죽어야 한다. 나 한 사람이 죽으면 전체의 평화가 이루어진다.

셋째, 자기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 낮은 자존감 + 열등의식을 가지고 산다.
죄의 결과 중에서, 대단히 심각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미워한다. 죄악된 일에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방치한다. 알고도 죄를 짓는다.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면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자신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평강을 이룰 수 있다.


2. 예수님만이 온전한 평화를 이루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이다. 피를 흘리신 이유이다. 완벽하게 평화를 선포하셨다.
17년 전(1997 년)에 태평양 섬에 아직까지 숨어 살고 있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인들에 관한 Doc-Umentary가 방영되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병사가 기자에게 묻는다. “천황 폐하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기자가 그에게 기쁜 소리를 전해주었다. “전쟁은 이미 57년 전에 끝났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는, 약 2,000년 전에, 이미 주어졌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졌다. 이 평화를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라.

kks200.jpg
이 글 태그와 관련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