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강해
2019.10.13 19:59

"덕분에"가 아니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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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 설교 영상은 시스템 오류로 인해 녹화되지 못하였습니다" 



[ 빌립보서 3:1-9 ]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본문: 빌립보서 3:1-9   제목: “덕분에가 아니라, “때문에

 

바울은 이제 편지를 마무리 하려는 것처럼 끝으로라는 말로 편지를 이어갑니다. 옛날 성경에는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서,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으로 해석하기도 했었습니다.

끝으로에 해당하는 Τ λοιπν은 글의 결론을 말할 때도 사용하지만, 꼭 결론부가 아니더라도, 중간 마무리 발언을 할 때나 앞서 말한 것 중에서 이것 만큼은 기억하라는 의도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인 기뻐하라는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 끝으로라는 말을 합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거듭 말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다시 한 번 여러분께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 세상적으로 보면 전혀 기뻐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적으로는 기뻐할 일이 별로 없으십니까? 그럴수록 더 주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축원드립니다.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주님 "덕분에" 기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겁니다.

"덕분에" "때문에"의 의미가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덕분에"는 원인의 결과에 더 초점을 맞추는 말이라면, "때문에"는 원인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말입니다.


'당신 덕분에 식사 맛있게 해서 기쁩니다'라는 말은 결국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결과 때문에 기쁜 것에 더 방점이 있습니다. 만약 식사가 맛이 없었으면 기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인 거죠. 반면에 '당신 때문에 식사 맛있게 해서 기쁩니다.' 라는 말은 음식과 상관 없이 '그 사람' 때문에 기쁘다는 점을 더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사실 딱 잘라서 이거다 저거다 할 수는 없지만,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덕분에" 신앙이 있고, "때문에" 신앙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예수님 덕만 보려는 신앙을 저는 "덕분에"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믿으면 그 "덕분에" 하는 일도 잘 되고, 재물도 늘어나고, 자식도 잘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예수님 덕 보려는 신앙입니다.


반대로 "때문에" 신앙은 오직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기쁨과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덕을 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얻은 것보다 더 큰 덕을 본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또 무슨 덕을 더 보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오직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예수님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바울이나 빌립보 교인들은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 믿고 덕 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예수님 덕분에 손해만 본 사람입니다. 예수 안 믿었으면 바울의 앞 길에는 그야말로 고속도로가 놓여 있었습니다.

5에 보면 그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족속이며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입니다. 신분적으로는 탁월한 율법교사 바리새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후계 준비의 일환으로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섰으며, 누구보다 열심을 그 일을 수행했습니다.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다고 자부할 만큼 완벽하게 스펙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가진 이런 스펙들은 우리가 열심히 예수 믿는 목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나와 내 자녀들의 앞길에 고속도로가 놓이기를 바라는 것이 예수 믿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8절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이를 보면 바울은 철저히 예수님 "때문에" 신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길 수 있었고, 예수님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상황이 어떤 가에 상관 없이 언제나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한 언제나 기쁨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덕분에" 신앙은 예수님 자체 보다는 그로 인한 부가적 유익에 더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할례파들의 율법주의 신앙과 같습니다. 그들이 몸에 상해를 가하는 할례를 하고 율법을 지키려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의롭게 되어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다소 심한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2절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몸을 상해하는 일"은 옛날 성경에는 '손할례당'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개가 주인을 기뻐하는 이유는 먹을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주인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덕분에" 잘 먹을 수 있어야 주인을 보면서 꼬리를 치며 기뻐합니다.


바울은 말씀대로 살려는 이유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덕분에 소위 복을 더 받으려는 사람들을 ""에 비유하면서 그들을 삼가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신앙은 결코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덕 보기 위해 예수 믿으면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덕을 봐야, ‘이만 하면 됐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더 복 안주셔도 충분합니다.’ 하면서 자족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욕심은 내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더 치중하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덕분에신앙은 항상 기뻐하는 대신에 화를 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대신에 불만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대신에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문에신앙은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구원이라는 가장 큰 덕을 이미 봤기 때문에 다른 것은 다 해로 여깁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께만 초첨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를 해도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만 자랑합니다(3).

신앙생활의 목적이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더 아는 지식을 위해 합니다.


8절 하반절에 바울은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그리스도만 얻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면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그 사람은 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도 '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간증이 뭡니까? 내가 예수님 덕분에얼마나 잘 되었는지를 자랑합니다. 작년엔가 어떤 은퇴 목사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목회자로서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저도 신학교 시절에 그분에게 목회학을 배웠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 만남 이후로 완전히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고백이 '열심히 목회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서 재산을 엄청 모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모님이 재주가 많아서 부동산을 좀 했는데, 이래 저래 해서 지금은 재산이 40억이나 된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우리는 노후 걱정 없다'는 겁니다. 예수 덕분에부자 됐다는 겁니다.


저는 목사님이 평생 목회 하시고 받은 은혜를 나누는데, 예수님 "덕분에" 부자됐다는 걸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우리 장로님이 옆에 앉아 계시는데 그 말씀을 하셔서 제가 얼마나 민망했는지요.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쩌란 말입니까? 머리 둘 곳도 없이 살다가 십자가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저주받은 겁니까? 평생 예수 믿고도 가난하게 사는 성도들은 도대체 뭡니까? 바울은 뭐고 초대교회성도들은 뭡니까? 그분들은 은혜를 못 받은 건가요? 반대로 예수 안 믿고도 돈 많이 벌고 잘 되는 사람은 또 뭡니까?


물론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님 덕 좀 볼 수 있지요. 예수님 덕분에 부자도 되고 성공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 안됩니다. 이것이 우리 기쁨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고도 평생 기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뭡니까? 기쁨의 이유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상황이 더 좋아져서 기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그 예수님 한 분 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들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의 비밀이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다"(13:11)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8:10)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쁨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발견되는 사람입니다. 재물이 있으나 없으나, 건강이 있으나 없으나, 저 사람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는 돈 좀 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학벌 좀 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24에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지파들을 세겜에 모으고 유언적 설교를 합니다. 설교내용의 핵심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 백성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16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고,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였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덕분에" 우리가 자유인이 되어서 가나안에서 잘 살게 되었으니까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19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가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 스스로 증인이 되어서 책임지겠다고 장담하고 돌을 세워서 증거로 삼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는 하나님 덕분에 모든 것이 잘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헌신과 수고는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덕만 보고 살다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니까 싫은 겁니다. 기쁘지 않고 괴롭고 귀찮은 거에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때문에" 신앙을 가졌다면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하던 민족을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 "때문"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그분의 계명과 율례를 기쁨으로 지켰을 것입니다. 이를 안 하박국 선지자는 뭐라고 기도합니까?

3:2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우리가 자녀들이나 배우자 때문에 열받고 갈등이 생기는 이유가 뭣 때문입니까? 덕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사고 싶고, 배우자 덕분에 호강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들과 배우자는 덕분에 호강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 때문에기뻐하라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범사에 기뻐해야 할 이유는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기쁨의 이유가 되지 아니하고 배설물로 여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신용산 강단

오원석 담임목사 설교 모음 *영상자료는 3년간만 보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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